2대주주→국민연금→개미로 이어진 ‘벼랑 끝’ 지분 싸움 일단락
3라운드 ‘캐스팅 보트’ 쥔 소액주주들, 임종윤 형제 손 들어줘
그룹 통합도 ‘급제동’…OCI 측 “주주 뜻 받아들이고 통합 중단”
‘형제는 용감했다’…故 임성기 회장 ‘글로벌 신약 꿈’ 이어가나

▲ 한미약품그룹 임종윤(왼쪽), 임종훈(오른쪽) 형제
▲ 한미약품그룹 임종윤(왼쪽), 임종훈(오른쪽) 형제

[메디코파마뉴스=이헌구 기자]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막판 승부처가 된 개미들의 표심이 그룹 통합을 이끌었던 송영숙 회장에 대한 ‘심판론’으로 향했다. OCI그룹과 통합을 둘러싼 한미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소액주주들이 고(故) 임성기 선대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임 씨 형제가 이사회를 장악한 만큼 송 회장이 추진하던 통합 그룹 출범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8일 경기 화성시 라비돌호텔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의 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OCI그룹과 통합을 반대하는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했다. 반면, OCI그룹과 통합에 나섰던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쪽에서 추천한 6명 후보에 대한 이사 선임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이로써 9명으로 구성되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임종윤·종훈 형제 쪽은 과반인 5석을 차지하면서 이사회를 장악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미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 작업은 사실상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 사진제공=한미약품
▲ 사진제공=한미약품

앞서 한미약품그룹은 지난 1월 12일 공시를 통해 OCI그룹과 통합 계획을 밝혔다. 각 사 현물출자와 신주발행을 통해 두 그룹을 합치자는 데 서명한 것이다.

OCI홀딩스는 오는 6월 30일까지 7,700여억 원에 한미사이언스의 주식 2,065만1,295주(지분율 27.03%)를 사들이고 최대주주에 올라서는 게 당초 계획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번 그룹 통합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캐스팅보트의 등장이 있기 전 구상이다.

그러나 지난 23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긴 침묵을 깨고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12.15%를 보유한 2대 주주인 그가 임종윤·종훈 형제에 지지 의사를 밝힌 것.

이 때까지만 해도 임종윤·종훈 형제가 경영권을 되찾아 올 가능성은 상당히 높게 점쳐졌다. 그도 그럴 것이, 또 다른 캐스팅보트로 지목됐던 국민연금(한미사이언스 지분 7.66% 보유)이 이번 다툼에 기어를 중립에 둘 것으로 점쳐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당초 주식 보유 목적도 경영 참여가 아닌 단순 투자였다. 이는 한미약품 오너일가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표 행사는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 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국민연금이 지난해 한미사이언스 주총에 올라온 의안에 대해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에 대해서만 반대표를 던지고 이사진의 구성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않았던 점도 이들이 올 정기 주총에서 중립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국민연금이 주총 하루 전인 지난 27일,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총 안건 가운데 송 회장 측이 제안한 이사 선임에 대한 안건에 찬성표를 내기로 한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추천한 이사 선임 안건에는 반대하기로 했다.

▲ 한미그룹 송영숙 회장(왼쪽), 임주현 부회장(오른쪽)
▲ 한미그룹 송영숙 회장(왼쪽), 임주현 부회장(오른쪽)

이로써 송 회장 측은 재단과 국민연금 등을 통해 우호 지분을 42.67%까지 끌어모으며 40.56%의 지분을 가진 임종윤·종훈 형제 측과 지분 격차를 2% 이상 벌려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미 경영권 쟁탈전의 마지막 승부처는 이른바 개미로 일컫는 소액주주들의 손에 맡겨졌다.

당초 시장의 예상은 소액주주들이 임 씨 형제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점쳐졌다. 그룹 통합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배제한 신주발행안 자체가 OCI 측에 유리한 조건인 데다 수급 물량이 늘어나게 되면 사실상 소액주주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실제 지난 28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증명됐다.

이날 확인된 소액주주들의 지분 규모는 13.64%에 달했다. 앞서 송 회장 측과 임 씨 형제 측의 지분 격차가 2%대였던 만큼 개미들의 손으로 그룹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된 것.

이날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총 개표 결과, 송 회장 측에서 제시한 이사진 6인은 전체 주식의 과반을 득표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임 씨 형제 측이 주주 제안한 5인의 이사들은 모두 50%가 넘는 찬성표를 얻었다.

그동안 통합에 반대했던 임종윤·종훈 형제가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실제로 통합을 추진했던 OCI홀딩스는 이날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총회 직후 입장문을 통해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1월 12일 송영숙 회장 측이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 계약을 체결한 직후 임종윤·종훈 형제가 반발하면서 촉발된 한미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76일 만에 임 씨 형제 측의 승리로 일단락 됐다.

한편, 한미약품 임종윤·종훈 사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한미약품그룹의 시가총액을 200조 원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는 故 임성기 회장이 품었던 글로벌 빅파마의 꿈을 수치화한 것”이라며 “선대 회장의 경영 DNA를 이어받아 한미약품그룹을 글로벌 파마로 도약시키겠다”고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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