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 백신 도입에 기존 백신 가치↓…대규모 폐기 불가피
“상황별 유연한 수급 정책 시급…국민혈세 낭비 막는 길”

▲ 유토이미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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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이효인 기자] 올해 도입 예정인 막대한 코로나19 백신이 재고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방역당국이 접종률 제고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백신 회의론이 확산하며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개량백신의 등장으로 도입 물량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존 백신의 효용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전략을 고위험군으로 전환하고, 이에 맞게 물량 수급 계획을 재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정부가 올겨울 7차 대유행을 경고하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적극 독려하고 있지만 접종률은 좀처럼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등장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확진자와 재감염 사례, 부작용에 대한 정부 보상 및 책임 체계 미비, N차 접종에 대한 피로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분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전체 인구 대비)은 1차 87.9%, 2차 87.1%. 3차 65.6%, 4차 14.7%로 회차를 거듭할수록 크게 낮아졌다. 지난달 27일(모더나 BA.1)과 이달 7일(화이자 BA.1) 접종이 시작된 2가 백신도 높은 접종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현재(7일 0시 기준)까지 누적 예약자는 165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3.7%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방역 당국이 확보한 코로나19 백신 물량이 향후 어떻게 처리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잠재적 접종 수요 대비 재고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실제로 올해 국내에 도입되는 전체 물량은 1억4,379만 회분으로 이중 5,079만회분이 상반기에 들어왔고, 연말까지 9,300만회분이 추가로 도입될 예정이다.

더 큰 문제는 전체 도입 물량 중 절대 다수가 오미크론 변이에 특화된 2가 백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방역 당국의 2022~2023년 동절기 코로나19 추가접종(2가 백신) 계획을 살펴보면 만 18세 이상 1~2차 백신 접종 완료자는 곧바로 2가 백신을 맞을 수 있다. 그동안 3~4차 부스터샷으로 활용되던 기존 백신의 역할은 사실상 끝이 난 셈이다.

정부는 올해 도입되는 코로나19 백신 폐기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사와 협의를 진행, 2가 백신으로 변경해 들여오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입 계약 당시 오미크론 변이 변수를 비롯해 개량백신 개발·상용화 등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었던 만큼 계약서 상에 제품 변경과 관련한 특약이 삽입돼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즉 개발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 정부의 요청에 응할 유인이 없다는 얘기다.

제3국 공여도 언급되고 있지만 재고 소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백신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재고 물량의 상당수(2022년 도입 물량 중 화이자 6,000만회 분, 모더나 2,847만회분)가 콜드체인 유통망이 필요한 mRNA 기반 백신이라는 이유에서다.

의료계는 이같은 코로나19 백신 재고 문제 발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데는 전반적으로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수급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신 회의론이 짙어진 현 상황에서 코로나19 치명률이 0.01%(11.2 질병관리청 기준)로 독감(인플루엔자) 치명률(0.05~0.1%)보다 한참 낮은 연령층(0~49세)까지 모두 끌고 가겠다는 기조를 유지한다면 재고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코로나19 치명률이 독감을 한참 넘어서는 60대(0.13%), 70대(0.5%), 80대 이상(2.17%) 고령층의 접종률 제고에 일단 초점을 맞추고, 기존 전국민 대상 백신 물량 확보 기조에 변화가 있어야 혈세 낭비를 막고, 방역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7일 기준으로 만 18세 이상 성인의 접종을 위해 총 1,730만회분의 2가 백신을 도입했으며 향후 순차적으로 추가할 계획이다. 전국민을 전제로 한 백신 물량 공급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감염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믿음이 깨지면서 백신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는데 전국민 접종을 전제로 한 현 물량 수급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새로 도입되고 있는 2가 백신 역시 향후 재고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기존 백신의 대량 폐기는 급변한 방역 환경으로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반복하면 결국 혈세 낭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백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단기간에 반전시키기 어렵다면 우선 접종 실익이 높은 고령층을 타깃으로 한 맞춤형 홍보를 강화하고, 이에 맞춰 백신 도입 물량도 과감하게 조절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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