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인터뷰
韓 정부 제약사 세금 지원, 美·日 공제 혜택에 ‘절반’ 수준
“R&D 기반의 제약산업 특성 인정해야…법리적 검토 시급”

사진=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 사진=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제약주권’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체적으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만이 감염병 사태의 위기를 돌파할 해법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대형 제약사들이 연 매출 1조 원만 달성해도 자화자찬에 빠져 있는 동안 글로벌 빅파마들은 R&D(연구개발) 투자에만 매년 수 십조 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공개한 ‘2020 제약바이오산업 데이터북’에서 글로벌 상위 50대 제약사에 토종 기업은 전무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톱50에 10곳의 제약사가 이름을 올렸으며 중국과 인도 역시 순위권에 포진해 있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지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한국조세정책학회 오문성 회장은 우리나라 조세제도가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가로막았던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메디코파마뉴스>는 오 회장을 만나 국내 조세제도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지원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국내 제약기업에 대한 정부의 세제지원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해달라.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한·미·일 법인세 공제·감면율을 분석한 결과가 있다. 공제·감면율이 높다는 것은 정부의 세금 지원이 많다는 것인데, 2019년 기준 일본 24.8%, 미국 18.6%(2018년 기준), 한국 8.4% 순으로 드러났다.

이는 세금 1억 원당 일본 기업이 2,480만 원의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은 반면 국내 기업은 840만 원 정도에 그쳤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결국, 국내기업에 대한 정부의 세제지원 수준이 전반적으로 미국·일본 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는 의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법인세 공제·감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R&D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의 경우 대기업에 R&D 비용의 최대 10%까지 세액공제를 허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일반적인 대기업이라면 당기 투자비용의 최대 2%에 불과하다.

때문에 R&D 투자가 핵심인 제약바이오산업의 특성상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무엇보다 세제지원을 우선순위에 놓고 검토해야 한다.

≫ 백신을 ‘국가전략기술’로 최근 선정했다는데 어떤 내용인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백신주권’ 확보에 대한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절감했다. 기업의 이익을 떠나 국민 생명의 위협이 걸린 사안인 만큼 백신 개발 분야에 대해 세제지원을 더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조세는 정부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경제 활성화와 소득 불평등 해소 등 다양한 정책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IT산업에서 한계를 느낀 정부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육성을 통해 미래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조세 지원은 그 당위성이 분명하다.

물론 무턱대고 제약산업에 대해 조세 지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 경쟁력을 감안해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타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올해 정부가 백신 분야를 국가 핵심전략기술로 선정해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 시 추가적인 세액공제를 부여하도록 했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 분명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백신 대란을 경험했듯이 앞으로라도 백신 자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 2일 이를 반영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만큼 새로운 조세법이 내년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개정안은 국가안보 및 국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대해 2024년까지 현행 신성장·원천기술보다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고, 신성장·원천기술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적용 기한도 2024년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제약바이오 시설투자에 대한 신성장·원천기술은 통합 세액공제를 통해 대기업은 투자 비용의 최대 3%, 중견기업 5%, 중소기업 12%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백신 분야는 이보다 더 상향 우대한다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이 조세 혜택은 백신 뿐 아니라 향후 바이오 분야로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별로 세제지원에 차이를 두고 있다. 해외는 어떤가?

업계에서 요구하는 사항 중 하나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기술대여 거래에 대한 조세 감면 도입이다.

제약산업의 기술거래 형태는 대학, 연구기관, 바이오벤처 등으로부터 물질도입 기술을 제약사가 이전받고 이를 추가 연구 개발해 다시 글로벌 제약사에 대여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여기서 현행 기술대여 거래에 대해 세금을 25% 감면하는 제도는 중소기업에만 적용된다.

문제는 기술거래 계약의 주체 대부분(90%)이 대기업이라는 점이다. 제약산업육성 지원 특별법에 따른 ‘혁신형 제약기업’을 포함해 대형 제약사에게도 실제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로 최근 상당수 해외 선진국들은 ‘기업 규모별 차등 지원’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경우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R&D 공제율이 75%로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지난 2003년부터 대기업도 연구개발 세제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중소기업(12%)과 대기업(6~16%)에 대한 정부의 R&D 세제 지원 차이가 줄어 들고 있다.

뉴질랜드, 그리스, 아이슬란드, 멕시코 등도 기업 규모별 차등 지원을 두지 않는 곳들이다. 영국의 경우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공제 수준은 높지만, 대신 대기업에 대해 공제와 환급의 상한 한도를 만들지 않아 형평성을 확보했다.

물론 중소 제약사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다만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대형 제약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해외 사례에서도 영국, 스위스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기술이전으로부터 얻은 소득과 대여이익에 대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이른바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일 통과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기술대여소득의 세액 감면 대상을 중견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실렸다. 국내도 점차 규모별 차등 지원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 균형감 있는 조세 지원을 위해 추가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업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또 있다. 최근 바이오의약품의 CDMO(위탁개발생산)와 관련한 세제 혜택이다.

첨단 바이오의약품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세제 혜택은 이제 필수적이다. 앞서 더블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수탁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 신설 조특법 개정안도 이 같은 추세를 대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혁신형 개량신약 및 바이오시밀러의 임상 역시 신성장 원천기술 분야에 포함시켜 수탁개발기관(CDO)과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등에게도 세제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신약개발 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임상연구와 바이오시밀러 강국으로 함께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액공제·감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법인세 최저한세’ 제도 폐지의 검토 역시 추후 고민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는 해외 사례에서도 일부 적용되고 있다. 법인세 최저한세 제도는 기업이 납부해야 할 최소한의 법인세를 규정한 제도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7년 말 법인세율 인하와 함께 최저한세 제도를 폐지했으며 일본 역시 해당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좋지만 여전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산적하다. 대표적인 것이 일각에서 요구하는 ‘R&D 비용 초과공제액 환급 제도’ 도입이다.

바이오기업들이 이월 기간 확대에도 불구하고 사업 초기 결손금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세액공제 초과액 환급제도를 도입하자는 부분은 공감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국내 법인세제 안에서 시행된 적이 없는 파격적인 제도인 만큼 충분한 준비 기간과 합리적 방안 모색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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