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이후 시민단체・의료계 충돌
시민계, 의사 수 부족 따른 인재…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주장
의료계, 저수가・기피과 문제 등 의료시스템 개선…필수의료 지원 필요

▲ 유토이미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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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 이후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이 의사 수 부족에 따른 문제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료계는 저수가와 기피과 발생 등으로 인한 의료시스템이 문제인 만큼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등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뇌출혈을 진단받은 30대 간호사 A씨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색전술 등의 처치를 받았으나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술 치료가 필요해 결국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전원 조치했다가 끝내 사망했다.

문제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신경외과 의사 25명 중 개두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뿐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개두수술이 가능한 의사 2명은 각각 사건 당일 해외 학회 일정과 휴가 등으로 인해 빠른 시간 내 병원으로 복귀할 수 없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 시민단체, 의사 수 부족이 문제…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필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의사 수 부족으로 인한 문제인 만큼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의료 공백이 발생할 때마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피력하는 이유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환자가 365일, 24시간 발생할 수 있는 조건에서 학회나 휴가 등의 변수가 존재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고 각종 평가도 이를 기준으로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술할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며 “의사인력 부족으로 국내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원내 직원의 응급수술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응급수술이 가능한 의사 인력은 국내 대학병원에서도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긴급한 응급상황이 발생할 시 대처는 사실상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금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진료과의 불균형 등을 야기하는 핵심적 문제임이 재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7년째 제자리 걸음인 의대정원을 수요에 맞게 대폭 확대하고, 응급·외상 등 필수 의료를 책임질 수 있도록 양성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는 근본 원인 중 하나인 의사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필수의료 의사인력 확충을 위해 공공의대 신설을 빠른 시간 내에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국내 의료전달체계에서 최상위 단계인 상급종합병원에서 종사자의 응급상황조차 처리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르게 했고 그 원인이 의사의 휴가로 인한 공백을 메울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코로나19로 드러난 부실한 공공의료체계에 이어 부실한 응급의료 대응체계와 부족한 의사 인력 등 우리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재확인시켜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이 대체인력도 확보하지 못할 만큼 적정 의료인력을 채용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면 복지부는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 처벌과 함께 지원금 환수 등 행정조치를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중단된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정원 증원 방안을 조속히 매듭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안전하고 신속한 응급의료 대응체계를 마련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응급의료는 믿을 수 있는 병원과 의료인력 등 인프라 확충이 필수”라며 “필수응급의료에 대해서는 민간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의료계, 의료 시스템이 문제…필수의료 정부 지원 필요

반면 의료계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저수가와 기피과 발생 등 현재 의료 시스템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전체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분야, 필수과의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무작정 의사수를 증원한다고 해서 필수의료 과목의 전문의 부족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왜곡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늘린 그만큼 미용 분야 등 비급여·저위험 분야의 의사와 해당 의료기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외과계 특히 흉부외과, 뇌혈관외과, 산부인과 중 분만 분야 등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소위 기피과 현상에 대해 단지 어렵고 험한 것을 꺼려하는 세대와 가치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명감과 사회적 책무를 근간으로 의학에 몰두하고 전념하고자 하는 의사들에게 합당한 설 자리와 여건이 현실적으로 마련되어 있는지 근본에 접근해야 풀릴 문제라는 것이 의사협회 측의 설명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사망률 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 등으로 현행 기피과가 이에 해당되지만 매년 필수 진료과목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는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의를 취득하고 타과로의 진료과 변경 현상마저도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16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외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진료과목의 전문의를 취득 후 다른 진료과목을 진료하고 있다는 의사의 비율은 흉부외과 40.7%, 외과 12.8%, 산부인과 10.6%, 응급의학과 4.3%였다.

무엇보다 뇌혈관질환 등 긴급수술을 요하는 경우 대부분 응급한 위독사항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해당 과목 전문의는 1년 365일 온콜(on-call, 긴급대기)로 당직을 서야한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전문의를 비롯해 지원 의료인력 전반이 부족해 규모가 큰 병원이라 할지라도 극소수의 인원이 돌아가며 365일 전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온콜당직을 했음에도 환자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비 등을 지급하지 않거나 실제 야간에 수술을 하는 경우라도 이에 대한 보상과 피드백이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이러한 이유로 의사들은 필수의료 분과의 지원과 진료를 기피하게 되고 점점 해당 전문의가 고갈되다보니 소수의 전문의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협회는 ▲획기적 처우개선책을 통한 기피과 인식 개선 및 동기 부여 ▲의료분쟁특례법, 분쟁 비용 국고 지원 및 필수의료지원 특별법 제정 ▲뇌혈관 수술 등 해당 진료수가 현실화 ▲필수 의료 인력 수련비용의 국가 보장 ▲신경외과 전공의 우선 배정 등 중증 진료 분야 인력 확보 ▲권역, 지역별 민간병원과 연계한 필수의료 민관 협력(야간 온콜 시스템 도입)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다양한 재원 마련 ▲중증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국가책임제 시행 ▲지역 필수의료 육성;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 중요 ▲필수의료 우선순위, 수가 정상화 등 독립된 협의체 운영 필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의사협회는 “이번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다급하게 유관기관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각종 회의 및 정책간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진위파악과 대책을 마련한다고 분주한 모습만 반복됐다”며 “하지만 대부분이 일시적인 미봉책을 발표하는 정도에서 지나갔고 향후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면 또 다시 일련의 형식적인 절차와 과정이 재연되는 장면을 처절한 심정으로 목격해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번에 제안하는 의제들이 즉시 시행되고 중장기 과제로 별도 추진해야 할 부분은 중간 동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의료계 모두가 굳은 의지를 발현해야 할 것”이라며 “의사협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 필수 의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적 책임을 재차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필수의료과의 대우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협은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3년 연속 정원 대비 75%를 채우지 못하고 있고 지난 10년 간 흉부외과 전문의 배출은 연평균 24명이다. 선천성 심장병 수술이 가능한 소아 흉부외과 의사는 전국에 20여 명 남짓에 불과하다”면서 “모기에 물렸다며 119로 신고하고 새벽에 대학병원 피부과 당직의를 찾아오고 대학병원의 3분 진료가 발생하는 현실은 단순히 의사와 의료기관에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인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코로나 감염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의 노력과 재정을 담당하는 기관의 협조 하에 이 재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수조 원이 투입됐고 많은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택할 수 있었다”며 “정부는 필수과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대우와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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