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닉 호리지 한국로슈 대표이사

▲ 닉 호리지 한국로슈 대표이사
▲ 닉 호리지 한국로슈 대표이사

[메디코파마뉴스=최원석 기자]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제약사 로슈는 글로벌 시장을 대표적인 연구개발 기업이다. 1896년 설립된 이후 종양학, 면역학, 감염질환 등에서 혁신적인 치료제를 출시하며 치료의 기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왔다.

표적항암제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 인플루인자 치료제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 등이 대표적이다.

로슈는 이들 치료제를 기반으로 지난해 60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동시에 연간 15조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로 새로운 혁신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 의료현장에서도 로슈의 혁신치료제는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바스틴은 오랜 기간 전체 항암제 매출 선두를 유지한 바 있으며 허셉틴은 여전히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타미플루 또한 계절독감에 대처하는 필수의약품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혁신치료제도 영원할 수는 없다. 아바스틴과 허셉틴, 타미플루 모두 현재 글로벌 특허가 만료된 것. 로슈도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2018년 취임한 닉 호리지 한국로슈 대표이사는 이 변화의 시기에 한국지사를 이끌고 있다. <메디코파마뉴스>는 닉 호리지 대표이사를 만나 그간의 변화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Q. 그간 조직구조의 변화가 눈에 띈다. 업무 방식을 보다 유연하게 변화시킨 애자일(Agile) 트랜스포메이션이 대표적인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은 글로벌 차원에서 시작된 조직문화 혁신이다. 헬스케어 기술과 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로슈의 포트폴리오 역시 새로운 치료 영역으로 성장하며 꾸준히 진화했다.

과거의 비즈니스 방식이나 운영 모델로는 보다 많은 환자에게 최고의 결과물을 신속하게 전달하겠다는 로슈의 목표를 이뤄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추진한 게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한국로슈는 고객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이를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에 드는 시간과 과정을 대폭 축소하고, 직원 개개인이나 소규모 팀 단위에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업무 추진과 의사결정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해 임직원들의 마인드셋 등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도모했고, 이후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업무 방식과 비즈니스모델을 혁신했다. 지금은 치료 영역 또는 환자군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 환자의 치료 여정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니즈를 파악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조직으로 진화했다.

알츠하이머, 안과질환 등 로슈에게 생소한 분야에서 진단과 치료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빠르게 파악해야 했는데,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 이후 신속하게 파악해 이해하고 비즈니스 전략을 짤 수 있었다.

Q.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의 긍정적인 결과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국 내 주요 대형 병원에 분자종양보드(Molecular Tumor Board, MTB)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 의료(Personalized Healthcare, PHC)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생긴 권한과 자유를 기반으로 각 팀이 병원 별로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 접근했던 과정의 성과다. 회사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약 30% 정도 성장했는데,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전과 비교해 로슈의 의약품과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는 환자가 30% 늘어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은 ‘한국의 헬스케어 생태계에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이다. 이 기준에 따라 로슈는 헬스케어 전문가 및 보건의료 정책의 주요 의사 결정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환자의 건강한 삶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에 우리와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며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다른 다국적제약사분들이 늘어났다. 로슈가 새로운 접근의 선구자라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Q. 최근 면역항암제 티쎈트릭이 국민건강보험 급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향후 한국로슈의 행보에 주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티쎈트릭의 전략에 대해 설명한다면.

티쎈트릭의 급여 범위 확대는 확연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진과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 옵션이 많아지는 것 자체도 큰 가치가 있으며 의료진들도 역시 이러한 점에 대해 동의한다고 본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히 의약품의 허가와 보험급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최적의 환자에게 티쎈트릭이 안전하게 처방될 수 있도록, 한국의 의료진들과 협조하며 필요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로슈의 제품이 특정 환자군에게 가치를 줄 수 있다고 입증됐다면, 그 제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다.

더불어 환자와 의료진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최대한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 제품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분명 티쎈트릭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들이 있고,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보험급여 신청은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Q. 작년 상반기 폴라이비(성분명 폴라투주맙)의 급여 진행상황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조부께서 림프종으로 돌아가시기도했고, 맙테라 이후 특별한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아 관심이 높은 영역이다.

폴라이비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최근 발표된 데이터에 따르면 폴라이비 사용 환자들의 전체생존기간(OS)이 기존 요법 대비 유의한 개선을 보였고 최근 1차 치료에서도 20여년만에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해 EMA에서 승인, 새로운 옵션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는 만큼 국내 환자들에게도 임상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글로벌 시장에서는 로슈가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 간테네루맙(Gantenerumab)에 대한 관심도 크다. 다만 같은 계열의 앞선 치료제가 고전하고 있는 모습도 있다. 어떤 진행을 예상하나?

로슈가 개발 중인 간테네루맙은 베타(β)-아밀로이드 표적 항체치료제로 환자들의 뇌세포를 사멸시키는 원인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줄여 증상을 개선하는 기전이다.

올 해 하반기에 3상 임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더불어 알츠하이머 치료 영역에서 로슈는 치료제의 개발뿐 아니라 환자의 조기발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증상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환자에게 치료제를 처방할 경우, 이미 벌어진 뇌 손상의 재생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간테네루맙의 임상 연구 결과가 성공적이라는 전제 하에, 이러한 로슈의 접근 방식은 환자들에게 아주 가치 있는 해결책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Q. 혁신의약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약제비 지출 비중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대형 특허만료 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는 로슈에게는 불리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로슈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혁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 신약에 대한 외부의 인정과 접근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은 수십년 동안 조금의 수익도 내지 못하거나 임상 연구에 실패하더라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얻게 되는 결실이다.

로슈 그룹은 작년 기준, 전체 매출의 20% 이상에 달하는 16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R&D에 투자했다. 이는 업계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을 통틀어도 상위 20개 기업에 속한다. 말로만 혁신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투자는 사회 발전에 중요한 가치를 불러올 것이라 믿는다.

노력과 투자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꾸준한 인정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치료 환경 개선의 여지가 생긴다. 오리지널의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다른 회사들이 제네릭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특허 만료에 대한 오리지널의 가격인하만 적절히 이뤄진다면, 선순환을 통해 향후 다른 혁신 의약품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저작권자 © 메디코파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