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기업, 직거래 ‘기피현상’…“국가예방접종사업 낮은 단가 부담”
무료 독감 백신 수급난 현실화…개원가, “물량 확보, 하늘의 별 따기”
경실련, “정부, 공급 안정화 위해 직구 또는 생산 시스템 마련해야”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독감 백신 수급난이 매년 반복되자,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이 나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소아와 임신부용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해 정부가 노인접종용 독감 백신처럼 구매에서부터 분배까지 일괄 처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생후 6개월에서 만 13세까지 어린이와 임신부 등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인플루엔자(독감)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이 백신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올해 보급되는 독감 백신은 모두 2,680만 회분으로 3,000만 회분이었던 지난해 보다 소폭 줄어든 수준이다.

이 중 70%(1,896만5,269회분)는 시중에 유통 전 품질검사를 마친 상태이며, 남은 물량은 다음달 말까지 차례로 승인될 예정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보면 올해 독감 백신 공급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막을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 백신 수급난을 호소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현재 어린이와 임신부에게 접종하는 독감 백신은 노인접종용과 달리 개별 의료기관이 도매업체를 통해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백신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 도매업체가 ‘반품 및 국가예방접종사업 불가’라는 불평등한 조건을 내걸면서 주문을 받고 있어 개원의들이 백신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최근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공식 입장을 통해 “이제 막 시작된 국가예방접종사업의 파행이 예상된다”며 “인터넷 도매업체들이 소아·임신부용 백신을 기존 거래 여부나 주문량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문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약사나 도매상이 일반 물량을 국가예방접종사업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는 NIP 공급 가격과 일반가의 차이에서도 온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 간극을 좁히는 조치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노인접종용 무료 백신은 정부가 총량 구매 후 병원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반면 어린이·임신부용 백신의 경우 각 병원들이 자체 구매해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 때 백신의 금액이 정부가 책정한 금액을 넘어서면 그 비용은 제약사나 도매상이 병원에 환급해줘야 하는 구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계는 제약사들이 이 환급금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일반 물량을 국가예방접종사업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기업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출하된 백신 물량은 사전에 정부와 수요 예측을 마친 물량인 만큼 공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국가예방접종사업을 위한 백신이 매년 낮은 단가로 책정되다보니 사업 참여에 부담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매년 독감 백신 시즌마다 수급난이 반복되자 정부가 물량을 일괄 확보한 후 분배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 남은경 국장은 최근 <메디코파마뉴스>와의 통화에서 “영유아와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독감 백신의 경우 의료기관별로 직접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매년 반복되는 것”이라며 “만약 백신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 제약기업이 있다면 해당 기업에는 패널티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영유아·임산부용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정부가 제품을 일괄 구매하고 이를 의료기관에 나눠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 발 더 나아가 정부가 백신 생산부터 공급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서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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