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제약바이오 2021년 상반기 재고자산 현황(上)
제약사 51곳, 평균 재고 10% ‘급증’…회전율은 0.28% ‘감소’
재고 증가 속도 ‘따라잡은’ 영업 스피드…기업 성장 ‘희비’

국내 상당수 제약사가 수익성 악화에 빠졌다. 재고 회전율이 창고에 쌓아놓은 물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통상 재고액이 증가하면 실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여기에는 재고 회전율이 받쳐줘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올해 들어서만 제약사들이 추가로 떠안은 재고자산 규모는 6,500억 원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재고 회전율은 10곳 중 7곳이 감소했으며 평균 0.28회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일부 기업들의 불어난 재고량이 원인이었다.

<메디코파마뉴스>는 주요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51곳의 반기보고서를 통해 기업별 재고자산 규모와 매출 추이를 분석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전체 기업의 총 재고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대비 평균 9.5%, 6,510억 원이 늘어난 7조4,81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재고가 증가한 곳은 29곳, 줄어든 곳은 22곳이었다. 제약사 절반 이상은 재고자산이 늘어난 셈이다. 기업의 전체 자산 중 재고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4.11%로 나타났다.

재고자산이 줄어든 곳은 대체로 성장이 정체된 모양새였다. 실제로 재고자산이 감소한 22곳 중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은 5곳에 불과했다.

반대로 재고가 증가한 곳은 매출 성장 여부에 따라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반영되면서 기업별 희비가 엇갈렸다. 매출과 재고자산이 함께 늘어난 곳은 영업실적이 호전된 반면, 매출이 재고자산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곳은 실적 부진에 시달린 것.

기업들의 재고자산 회전율은 지난해 말 평균 3.59회에서 올 상반기 3.31회로 0.28회 쪼그라 들었다. 회전율이 증가한 기업은 15곳, 전년 곳은 2곳, 감소한 곳은 34곳으로 집계됐다. 10곳 중 7곳은 올해 들어 제품 판매 속도가 더뎌진 셈이다.

재고자산 회전율은 재고 대비 매출을 보여주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기업의 성장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수익성 정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10억 원의 재고자산이 10회전이라면 재고자산의 10배인 1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이를 연간(365일) 회전일수로 계산해 보면 해당 기업의 재고자산은 약 36일마다 10억 원씩이 판매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 늘어나는 재고, 뒤 쫓는 영업 속도…‘성장의 정석’

통상 재고액이 증가해도 소진 속도가 빠르고 매출이 증가하면 곧 영업이익 개선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재고자산이 늘어나 매출과 영업이익이 함께 증가해 재미를 본 기업도 많았다.

씨젠(전년比 재고 증가율 102%, 영업이익 증가율 62%), SK바이오사이언스(48.46%↑, 흑자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36.17%↑, 67.8%↑), 하나제약(18.87%↑, 22%↑), 경남제약(16.98%↑, 36.8%↑), 셀트리온(14.55%↑, 15.9%↑), 동화약품(9.13%↑, 38%↑) 등이 매출 확대에 따라 재고 역시 늘어나면서 영업이익이 증가한 대표적인 곳들이다. 이들 기업 모두 ‘성장의 정석’을 보여준 셈이다.

대표적으로 씨젠은 재고 규모가 지난해 말보다 100% 이상 불어났지만 진단키트의 수출 호조로 매출이 84% 늘어났다. 이 회사는 재고 소진이 많았던 만큼 영업이익도 62%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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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형은 그대로인데 ‘쌓여만 가는’ 재고…중소제약사 ‘한숨’

문제는 별다른 ‘몸집 불리기’ 없이 재고만 쌓이는 경우다. 제품 생산은 많이 했는데 물건은 안 팔렸다는 뜻이다. 이는 실적 둔화와 현금흐름 악화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렇게 재고가 매출을 따라가지 못한 곳은 경동제약(전년比 재고 증가율 8.8%↑, 영업이익 증가율 22%↓), 현대약품(6.24%↑, 적자전환), 셀트리온헬스케어(5.33%↑, 24.5%↓), 대화제약(3.84%↑, 28.2%↓), 부광약품(3.38%↑, 적자전환), 일동제약(3.28%↑, 적자전환) 등이 대표적인 곳들이었다.

재고자산 회전율이 수익성과 직결된다는 공식은 이번 분석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실제로 재고가 매출을 따라가지 못한 앞선 기업들의 재고 회전율을 보면 경동제약(0.47회↓), 셀트리온헬스케어(0.2회↓), 대화제약(0.01회↓), 부광약품(0.32회↓), 일동제약(0.4회↓) 등 대부분이 작년보다 회전율이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 재고 줄였더니 쪼그라든 외형…수익성 악화까지 ‘이중고’

코로나19로 경영악화가 장기화되자 일부 기업은 올 들어 생산량과 재고량을 줄이면서 외형과 수익성 모두 직격타를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보다 재고량이 감소한 22곳 가운데 17곳은 영업이익이 급감하거나 적자 전환한 것.

올해 상반기 재고량이 줄어든 곳 중 제일약품, 영진약품, 팜젠사이언스, 조아제약 등은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삼진제약(전년比 영업이익 증감률 14%↓), 광동제약(28.2%↓), 알리코제약(44%↓), 삼일제약(67.9%↓), 경보제약(94.7%↓), 화일약품(61.7%↓), 동구바이오제약(41%↓) 등이 올 들어 수익성이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 재고 줄이고 회전율 높였더니 ‘늘어난’ 영업이익

‘재고 증가=실적 개선’ 공식에도 예외는 있었다. 재고량이 감소한 기업들 중에서도 판매고의 증가 속도가 재고량을 추월한 곳들은 외형과 내실 모두 챙긴 것.

휴젤, 셀트리온제약, 에스디바이오센서가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외형 성장률은 각각 43.4%, 103%, 793%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도 93%, 159%, 1086%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공통점도 나타났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재고자산 회전율이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휴젤의 재고 회전율은 지난해 말 2.4회에서 올 상반기 3.1회로 늘어났고 셀트리온제약 2.92회에서 5.32회로, 에스디바이오센서는 4.13회에서 5.27회로 증가했다.

≫ 셀트리온헬스케어, 재고량이 매출 ‘추월’…수익성 악화 현실화

가장 많은 재고를 쌓아두었던 곳은 셀트리온헬스케어로 그 규모만 2조1,431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반년 만에 1,085억 원(전년대비 +5.33%)이 늘어난 수치다. 이 회사의 전체 자산에서 재고자산이 차지하는 비율도 57% 수준으로 업계 최다 수준이었다.

다만 늘어난 재고량만큼 매출이 이를 따라가 주지 못하면서 이 회사의 수익성은 주춤하는 모습이다.

올 상반기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재고 증가율은 5.33%에 달했지만 매출 성장은 1.6%에 그치면서 영업이익은 24.5% 쪼그라든 1,076억 원에 머물렀다.

구체적으로 보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지난 6월 셀트리온으로부터 2,611억 원 규모의 램시마와 트룩시마,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를 받아들였다. 앞서 3월에는 유플라이마, 램시마IV, 허쥬마, 트룩시마 등 2,896억 원 규모의 상품을 도입한 바 있다.

한편,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해외 바이오시밀러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초기 안전재고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제품이나 상품이 아닌 83%가 반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제품은 완성된 상품은 아니지만, 판매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수출이 언제든 가능하도록 준비됐다는 뜻이다.

≫ 녹십자, 전통제약사 중 재고 최다…원료 확보 '특수성' 반영된 듯

GC녹십자도 4,781억 원의 재고액을 안고 있었다. 이는 전통제약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이 회사의 재고 내역을 보면 상품이 18%(858억원), 제품 16.6%(794억원)로 구성돼 있었으며 이 외 재공품 등이 65.4%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녹십자의 경우 혈액제제를 주력으로 하는 사업 특성상 사전에 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재고를 비축해 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셀트리온(4,417억원), 에스디바이오센서(3,245억원), 한미약품(2,945억원), 씨젠(2,806억원), 유한양행(2,730억원), 종근당(2,009억원), 대웅제약(1,816억원), 광동제약(1,153억원), 제일약품(1,076억원), 한독(1,062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1,043억원), 동아에스티(1,042억원) 순으로 1,000억 원 이상 재고 물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의 영업 환경이 어려워진다고 해도 재고자산은 늘어나는 게 최근의 추세”라며 “재고자산의 특성상 보이지 않는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영업환경에 맞춘 적정한 재고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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