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찬성률 산별총파업 가결…코로나 전담병원·선별진료소도 참여
공공병원 및 의료인력 확충 요구…"합의 불발시 2일부터 전면 총파업"
입원·진료 마비에 환자들은 골든타임 놓쳐…"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

사진 설명=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7일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89.76%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 사진 설명=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7일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89.76%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의료붕괴를 우려하며 파업을 선언했지만, 국민건강과 환자안전은 외면한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신종 감염병 4차 대유행 속에서 코로나19 전담병원과 선별진료소 보건의료인력도 파업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방역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파업으로 인해 진료가 마비될 경우 골든타임이 필요한 환자들은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선언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파업은 환자안전을 위한 것으로 잠깐의 불편함이나 피해를 국민이 이해해달라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89.76%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지난 18일부터 전날까지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전체 조합원 5만 6,091명 중 4만 5,892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4만 1,19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보건의료노조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보건의료인력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된다며 의료인력과 공공의료 확충 등을 요구해 왔다.

구체적으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공공병원 확충 ▲공공병원 시설·장비·인프라 구축 ▲직종별 적정 인력 기준 마련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대리처방 등 5대 불법의료 근절 ▲비정규직 고용 제한을 위한 평가 기준 강화 ▲의사 인력 확충 등 요구사항을 정부에 제시했다.

노조는 이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9월 1일 파업전야제를 개최하고, 2일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다만, 파업 중에 환자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는 필수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전담치료병동과 선별진료소 인력은 필수의료에 해당되지 않는 만큼 파업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파업은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모두가 방호복을 입고 페이스 쉴드와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거리두기 단계와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방호복 파업’으로 진행하되, 방식은 현재 내부 논의 중이다.

그동안 개별 의료기관의 로비에서 파업 농성을 벌였으나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임을 고려해 이 같은 방식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정치권 모두 노조가 요구하는 공공의료 및 보건 인력 확충 요구에 공감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이번 파업은 더 이상 이대로는 버틸 수 없어 벼랑 끝에 내몰린 코로나19 최전선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피눈물로 호소하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파업’이자 의료인력의 탈진과 소진, 사직으로 인한 ‘방역붕괴·의료붕괴를 막기 위한 파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파업이 예고된 9월 2일 전까지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는가에 따라 전면 파업은 사전에 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며 “남아 있는 기간 동안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보건복지부와 노정교섭에서 합의점을 만들기 위해 끈질긴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파업으로 골든타임 놓친 환자들, 치료 예후까지 영향 미쳐

문제는 노조의 파업으로 의료기관 업무가 마비될 때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환자한테 돌아간다는 점이다.

노조에서 파업을 할 때마다 의료기관에서는 입원환자를 퇴원 조치하거나 타 병원으로 전원을 보낸다. 외래 진료 역시 축소하거나 중단된다. 파업에 동참하는 인력 중 상당수가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이번에 노동쟁의조정 신청서를 낸 조합원은 5만 6,000여 명이다. 전체 의료인력(약 80만 명)의 10% 이내지만, 간호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민들이 노조의 파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다.

대전시 동구에 거주 중인 이해영(가명) 씨는 “수년 전 남편이 한 대학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병원 노조에서 파업을 했다. 회복 후 재활 치료가 필요한 시기였는데 파업으로 인해 한 달 가까이 치료가 전면 중지됐다”며 “재활 치료의 골든타임은 6개월이라는데 이 황금 같은 시기 중 한 달을 허무하게 놓쳤다”고 한탄했다.

이어 “당시 오죽하면 파업을 했을까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한테 돌아오니 나중에는 화만 났다”며 “여전히 휠체어조차 혼자 타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때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이번 파업으로 다른 환자들에게 또 피해를 주지 않을까싶은 마음에 섣불리 지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 강동구에 거주 중인 최인영(가명) 씨도 “의사든 노동자든 보건의료 관련 직종이 파업할 때마다 의료기관 업무는 마비되고 결국 그 피해는 환자들이 보지 않느냐”면서 “지난해 의사들이 파업할 때는 환자 볼모로 파업한다며 비판했으면서 올해는 본인들이 그러고 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보건의료인들이 지난 1년 7개월 동안 누구보다 고생하고 힘든 것은 알고 있지만 꼭 지금 그랬어야 했냐”며 “‘돈보다 생명’이라고 외치면서 그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애꿎은 환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이 같은 우려와 비판에 보건의료노조는 환자의 안전을 위한 파업이라며 이해해줄 것으로 호소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노조의 파업은 합법적인 파업이다. 때문에 이미 환자와 관련해 병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참으며 버텨왔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이 번아웃으로 힘들어지면 환자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만큼 우리의 파업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위한 파업”이라며 “이러한 측면에서 잠깐의 불편함이나 피해가 있겠지만 이를 이해해줬을 때 더 나은 조건이 마련될 수 있는 만큼 환자들과 국민이 좀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파업으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를 정부도 책임지고 느껴야 한다”며 “우리의 파업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계,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여 빠른 시기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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